방 안에서 가장 많이 알고있는 사람
프로덕트 매니저는 해당 제품이나 서비스를 둘러싼 모든 것들 — 시장, 경쟁환경, 트렌드, 기술적인 부분들 — 에 대해서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지식 사회에서 리더는 결국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될 수밖에 없다. 직급이 아무리 높더라도 회의중에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는 사람보다는, 직급이 낮더라도 해당 분야를 너무 잘 알고 있고 따라서 그에 기반해서 정말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는 사람에게로 리더십이 자연스럽게 모이게 된다. 프로덕트 매니저는 그런 리더가 되어야 한다. 흔히 리더십은 비전에서 나온다고 하는데, 비전은 자다가 또는 샤워하다가 갑자기 나오는게 아니라, 많이 알고 많이 생각하는 사람에게 어느날 갑자기 찾아오는 것이다.
조직은 사람이 가장 중요하고, 따라서 왠만큼 좋은 회사에서는 똑똑한 사람들만 모여 있게 마련이다. 똑똑한 사람들일수록 당연히 저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이 최고라는 확신이 강하고, 그러다 보면 방안에 모아놓은 사람들이 제각기 자기 주장을 펼치며 일이 진행이 안 되는 경우가 생기게 마련이다. 그렇다고 똑똑하지 않은 사람들로 조직을 구성할 수도 없는 입장인 것이다.
프로덕트 매니저는 자기보다 훨씬 더 똑똑한 사람들을 설득하는 건 물론 한걸음 더 나아가서 그들로 하여금 직접 일까지 하게끔 만들어야 되는 사람이다. 따라서 어설프게 내가 프로덕트 매니저기 때문에 이렇게 해야 한다, 이런 주장은 소위 씨알도 안 먹히는 말이다. 따라서 정확한 팩트와 데이터에 기반해서 주장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면에서 가끔 프로덕트 매니저는 법정에 서는 변호사와 같기도 하다고 느껴진다.
나도 개인적으로 내가 생각할 때는 너무도 당연한 기능인데 그걸 넣는 것에 대해서 반대하는 팀을 설득해야 할 때가 종종 있었다. 그럴때 그냥 “아니 이건 당연한 건데 왜 그걸 모르냐”는 등의 주관적인 설득을 펼치면 거의 성과가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누구나 납득 가능한 데이터를 제시하면 다른 반응을 얻을 수 있었다. 이를테면 한번은 유저들을 대상으로 내가 제안했던 기능에 대한 설문 조사를 했고, 그 결과 80% 이상이 그 기능을 필요로 한다고 답변을 했었다. 그 데이터를 제시하자 어렵지 않게 그 기능을 추가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었다. 전에는 반대했던 사람도 흔쾌히 결과를 수용했었다.
물론 남들을 설득하는 일에 너무 치중해서 거기에 시간과 에너지를 다 쓴다면 그것 역시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빨리빨리 서비스와 제품을 만들어도 모자랄 판에 무슨 내부 설득에 시간을 쏟는단 말인가. 하지만 어차피 일은 사람이 하는 거고, 육체노동이 아닌 지식 노동은 그걸 하는 사람들이 그 일을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100% 납득이 되어야 최대의 성과가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사람들을 설득하는 일은 일견 돌아가는 길처럼 보이고 시간낭비처럼 보이지만 큰 그림에서 본다면 그것이 오히려 지름길일 수도 있는 것이다.
가장 많이 알고 있어야 하는 대상은 시장이나 사용자 니즈에 대한 것도 있지만 기술에 대해서도 많이 알고 있어야 한다. 구글의 경우 엔지니어 출신의 PM들이 굉장히 많다. 코딩을 직접 할 필요는 없지만 엔지니어들과 함께 깊은 기술적 대화를 할 수 있는 기술적 지식은 갖추고 있어야 한다. 사실 나도 가장 부족했던 부분은 바로 이 부분이 아니었나 싶다.
말과 글에 능해야 한다
팩트와 데이터만큼 중요한게 없지만, 그 팩트와 데이터를 전달하는 소위 “딜리버리”역시 매우 중요하다. 세상은 이성만으로 되는게 아니라 감성적인 요소가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프로덕트 매니저에게 가장 중요한 자질중 하나는 커뮤니케이션 능력이다. 이렇게 말하면 너무 두리뭉실한 말이고,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말과 글에 능통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아는 주위의 뛰어난 프로덕트 매니저들을 보면 하나같이 정말 말 잘 하고, 글 잘 쓰는 사람들이다. 여기서 “잘 한다”는 말은 여러 가지를 포함하는데, 단순히 말을 번지르르 잘 한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이를테면 자신에게 온 이메일이 어떤 방식으로든 응답되는데 최대 24시간이 걸리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든지, 단순히 이메일을 포워딩만 하고 잊어버리는게 아니라 그 이메일이 잘 처리되고 있는지를 끝까지 팔로우업 하는 것, 이런 것들도 크게보면 모두 커뮤니케이션 능력에 해당하는 것이다. 목표는 자기가 커뮤니케이션 잘 하는 사람임을 증명하는게 아니라, 일을 이루어가기 위해서 모든 이익 대변자 (stakeholder) 들이 다 똑같은 정보를 가지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일이다.
글쓰기 능력도 중요한게, “팩트”라는 것 역시 몇단계 노드를 거치는 동안 변질되기 쉽기 때문이다. 왜 예전에 TV 프로그램에서 했던 게임중에, 매우 쉬운 단어 하나를 보여주고 다음 사람에게 그 단어를 설명하는 프로그램이 있지 않았는가? 불과 4명만 거쳐도 전혀 다른 단어를 말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점점 가면 갈수록 얼굴을 맞대고 같은 물리 공간에서 일하지 않고 지리적으로 분산된 환경에서 일하는 경우(”distributed company”)가 많아지는 추세이고, 따라서 장황하지 않게 간략하지만 효과적으로 커뮤니케이션 하는 글쓰기 능력이 점점 더 중요해진다. 사실 대부분의 프로덕트 매니저는 너무 바빠서 이메일 하나 쓰는데 정말 짧은 시간밖에 사용할 수 없다. 글뿐만 아니라 말도 마찬가지다. 짧은 시간내에 핵심적으로 말과 글로 커뮤니케이션하는 능력을 갖추는 훈련을 해야 한다. 단순히 친목 모임에서 자기 소개를 시켜봐도, 어떤 사람은 단 몇마디로 강한 인상을 남기는 반면 어떤 사람은 인생 살아온 이야기를 주저리 주저리 하는데 결론을 못내는 사람도 있다. 후자의 사람들은 회의때도 똑같은 양상을 보인다. 이런건 다 훈련이 필요한 영역이다.
덕을 갖춘 사람
실제적인 부분들을 많이 이야기헀지만 프로덕트 매니저에게 가장 중요한 부분중 하나는 인성적인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위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위해서 일하고 싶은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 많은 지식도 쌓아야 하고, 데이터와 팩트에 기반해서 주장도 펼칠 줄 알아야 하며, 커뮤니케이션 능력도 좋아야 하지만, 기본적으로 “덕”을 갖춘 사람이어야 한다. 인간적으로 다른 사람의 마음을 살 줄 아는 사람이 되야 하는 것이다.
무조건 좋은 사람이 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반대로 때로는 얼굴에 철판을 깔고 강력한 어조로 자기 주장을 펴면서 어려운 주장을 관철시킬 수 있어야 하는게 프로덕트 매니저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기계가 아닌 인간의 모습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저 사람은 나를 인정해 주는 사람이라고 느껴질 수 있는 사람, 공을 다른 사람에게 돌릴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내가 아는 한 프로덕트 매니저는 보는 앞에서는 사람을 있는대로 칭찬하지만 돌아서서 결정적인 순간에는 그사람보다 자신의 공을 은근히 내세우는 사람이 있다. 그는 그렇게 하는 것을 상대방이 모른다고 생각하지만, 세상은 생각보다 좁은거고, 또한 사람이란게 얼마나 영특한 동물인데 그런 것을 모르랴. 정말 인격이 앞선 사람은 상대방이 없거나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을 때에도 그사람에게 공을 돌릴 줄 아는 사람이다.
다시한번, 프로덕트 매니저는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일을 하게끔 하는 사람이다. 이 말은 결국 자신을 스스로 내세울 필요가 없는 사람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비전대로 열심히 일을 해주어서 좋은 성과가 나오면, 자기는 아무 일도 안해도 자연스럽게 부각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아니, 이렇게 좋은 글에 댓글이 없다니 이게 웬일입니까? 아마 승인을 아직 안하셔서 그런 듯. ㅎㅎ 잘 읽었습니다.
아뇨 그냥 댓글이 없었습니다. ㅎㅎ 트윗은 많이 되었는데요 (대표님 덕택에!)
좋은 글 감사합니다^^ 시간되시면 PM의 자질을 갖추기위한 방법도 부탁드립니다
일본에서 서버엔지니어로 일하고있는 숨은 독자중 한명입니다.^ ^
좋은 글 읽고 그냥 지나치기에, 댓글보니 그냥 갈 수가 없네요.
실제 구글에서 PM하시면서 진행관리할 때 사용하신 유용한 툴 또는 노하우 팁도 알려주실 수 있나요? (아무리 툴이 좋다하더라도 본인의 마인드가 가장 중요하겠지만..)
글쎄요 툴은 특별히 다른걸 쓴것 같진 않았던 것 같고요. 구글서는 아시다시피 구글닥스를 정말 살인적으로 많이 쓰거든요. 그거가지고 모든거 다 한듯… 그리고 내부적으로 buganizer라는 버그트래킹 툴을 썼는데 그것도 정말 씨름하듯 썼었죠.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읽어보면서 딱 제 얘기다 잘 맞고 잘 할수 있을텐데 하는 생각이 마구 든다면..
자만인가요..–;
지금 있는 곳에서는 그런 이런 나의 가치를 제대로 알아주지 않는다고 한다면..
현실에 대한 자각보다 착각이 더 큰걸까요..
그래도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나름 객관적이려고 많이 노력을..
여튼 글 잘 봤습니다~ ^^
좋은정보 많이 배웠습니다. 글을 읽으면서 PM 자리에 있는 제 자신을 상상해볼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언제 창업하셨던 회사가 인수되면서 Blogger의 PM이 되셨던 계기, 그리고 구글이라는 기업에서 적응하면서 겪으셨던 이야기도 듣고싶습니다.
실리콘벨리에서 꿈을 키우고 있는 젊은이 입니다^^
저랑 같은학교 출신이시군요. Go Blue!
항상 블로그에 들어와서 정말 좋은 글들 특히 매가리 없는 우수생들이란 글 보고 너무 감명받아서 그 외 다른 글들도 리트윗이나 제가 알고 있는 학생들에게 공유만 하고 감사하다는 말을 처음으로 남기고 가네요^^ 올려주시는 글들이 저같이 미래를 설계하면서 나아가는 대학생들에게 항상 큰 힘이 되네요. 감사합니다 ^^
사실 미시간 출신이신 이건우 선배님께 김창원 선배님 블로그 소개를 받았습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건너 건너 글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좋은글 잘 읽고 갑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현실감있는 조언을 듣는 것 같은 친밀함이 있네요.
감사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자신을 되돌아보게 하는 글이었습니다. 종종 지표가 될 것 같습니다! 🙂
좋은 글 너무 잘보았습니다.^^
평소에 생각해왔던 것들을 잘 정리해주셨네요. 매우 공감합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국내 대기업에 있다보니 부사간의 Hierarchy가 존재하니 찍어누르라는 지시를 받을때면…아니라고 생각합니다를 계속 말씀드렸는데, 시간이 갈수록 지치고 힘들어지니 타협을 고민했습니다
그런데 글을 읽고 나니 맞는길을 잘 가고 있었다는 '합리화'를 할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김창원사장님, 잘 지내시죠? 예전에 김창원 대리님이라고 부를때가 엇그제 같은데 시간이 많이 흘렀네요. 저희는 얼마전에 스위스 루체른으로 이사왔습니다. All the b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