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태어난지 삼일째 접어드는 조그만 아기가 나의 프로퍼티와 함수를 아주 많이 상속하고 있다는 것은 정말 신기한 경험이 아닐 수 없다. 나만 그런게 아니라 우리 와이프도 매우 신기해라 한다. 쬐그마한 생명체 하나가 젖을 먹으려 품을 파고드는데, 가만보니 여러모로 남편을 1:10 크기로 줄여놓은 축소모델 같다는게 마냥 신기한 모양이다. 그래서 나를 가장한 사람이 과연 나인지 아닌지를 확인할 수 있는 여러가지의 생체실험 – 이를테면 옆구리를 간지르면 오버해서 반응한다든지 – 을 아기에게 자꾸 실행해 보는 모양인데 그런건 너무 많이 하지 말아주세요.^^
출산에 대해서 하나의 포스트에 담을 엄두가 도무지 안 나는 이유는, 할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반대로 할 말이 너무나 엄청나게 많아서다. 아기는 내 인생의 너무도 큰 존재고 변화인지라, 감히 한 블로그에 담을 요량이 없다. 그래서 그냥 그날 있었던 몇가지 사건들만, 주로 교육의 목적으로 “사건의 재구성” 식으로 접근해 보련다.
– 출산일, 아침 7시반: 눈을 떠보니 1004ra님이 배가 아프다고 난리다. 앉지도, 서지도, 걷지도 못하고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그 전날 밤에도 배가 아파서 꼬박 새더니만, 간밤 역시 한숨도 못 잤다고 한다. 만일 내가 이런 상황이었다면 아마 눈에 보이는 물건을 다 때려 부수었을 것이다. (그래서 남자가 아닌 여자가 임신을 하나보다.) 그러면서도 남편을 안 깨운건 착한건지 미련한 건지.. 암튼 눈을 뜨자마자 부랴부랴 병원에 갈 채비를 한다. 근데 나는 또 그 와중에 어디서 들은건 있어가지고, 억지로 밥을 떠먹인다. (“병원에 가면 물도 안준대.. 힘주려면 아침은 꼭 먹고 가라..” 등등의 말을 들은 적이 있는지라ㅠ)
– 아침 9시: 병원에 도착. 이때쯤 거의 1004ra님은 질질 발을 끄는 상태. 바로 분만실로 입원. 매우심한 진통. 이걸 구태여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 같지만, 정말 애기낳는 것은 장난이 아니라는 걸 생생히 느꼈다.
– 아침 10시반: 무통주사를 맞고나서 어느정도 잠잠해짐. 잠시 안심한 나는 앞으로 펼쳐질 장기전에 대비하기 위해서, 아예 밥 한숟갈 먹고 오래 대기하자는 생각에 11시 40분경 밖으로 나옴. 언제나 늘 그렇듯, 역사는 꼭 이럴 때 이루어짐.
– 12시: 부랴부랴 밥을 먹고 왔더니 무통 주사를 맞고 잠잠하던 20분전쯤의 모습은 완전히 바뀌어, 실로 아비규환의 현장. 무통주사를 맞아서 근육이 이완되자 진행이 매우 빨리 되었다고 함. 나를 딱 보자마자 “도대체 어디갔었어…!!!”를 외쳐대는 우리 와이프와 간호사들. 흑, 겨우 20분 자리 비운건데… ㅠ.ㅠ 그나마 그새 애가 안 나와서 다행. 밥먹으러 간 동안 애기 나왔으면 다음주쯤에 서초동 갈 뻔했음.
– 12시 41분: 출산 성공. “애기 아버지, 탯줄 자르세요”라는 말에 가위를 들고 탯줄을 자름. 멋들어지게 한번에 탯줄 자르는 상상을 했건만, 이게 생각보다 잘 안잘라져서 몇번의 가위질로 주섬주섬 자름. 나만 그런줄 알았는데, 나중에 다른 애기아빠들 하는 말이 평소에 소고기 등심 자르는 연습을 했어야 한다나… 탯줄의 단단한 재료공학적 특성을 보며, 다시한번 생명의 신비를 느낌.
– 12시 45분: 살짝 씻고 나은 아기와 첫 대면. TNC 메일로도 보냈지만, 영화에 나오는 신생아들처럼 하얗고 뽀송뽀송하고 방실방실 웃고 있지는 않았음. 그리한지라 사진을 전체 게재하기는 부담이고 (아이의 초상권도 생각하지 않을 수도 없음), 크기 확 줄인 그때의 사진 첨부. 지금은 삼일 지났지만 살이 훨씬 더 통통히 올랐음.
뭐 대략 이러한 과정을 통해 아기를 보았는데… 이미 아기보신 분들은 뭐 남들 다하는 것 가지고 대수처럼 이야기하느냐고 하시겠지만, 늦은 나이에 첫출산을 경험한 나로써는 모든 게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이 포스트에서 다 말할수는 없겠지만, 정말 생명의 신비는 대단하다는 걸 느꼈다. 모든 것이 어쩌면 그렇게 잘 맞아 떨어지고 잘 설계되었을까. “그냥 원래부터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면 아무 감흥 없지만, “왜, 어떻게”라는 사유의 틀을 가지고 생명의 탄생 과정을 지켜보면 실로 조물주의 솜씨에 경탄을 금할 수 없다. 그렇게, 산부인과에서는 매일 우주 하나씩이 태어나고 있는 거다. 잘 모르겠다고? 와닿지 않는다고? 그럴 것이다. 직접 경험해 보시기 전까진.
각종 물리학 상수들의 결과론적으로 우리가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이 과학의 주장이지만, 어쩌면 이렇게 새로 태어나는 고귀한 생명을 위해서 그런 물리학 상수들이 처음부터 존재했던 것은 아닐까. 마치 셰익스피어의 소설이 10만년동안 타자기를 랜덤하게 쳤을 때 우연히 나온 결과라고 말한다면, 그것 자체가 통계학적으로 말이 안 되는 것은 아닐지언정, 셰익스피어에게는 무척이나 미안한 말일 것처럼… 나는 우리 아이에게는 그가 우연의 산물이라고 도저히 이야기할 수 없다.
하기사 여기서 뭐 이런 심오한 이야기를 할 것은 아니다. 암튼 다시한번 이 글에서 주고자 하는 교훈은… 남편님들, 절대로 아내 애낳는 동안에 밥먹으러 가거나, 커피 마시러 가거나, 담배피러 나가지 마세요. 거짓말처럼 딱 고런 순간에 큰 일이 치러진다니까요…!
@콩 – 2008/07/11 15:05
네, 저도 꼭 뵙고 싶습니다. 🙂
권선영입니다. 주니어 탄생 감축드려요…기사는 내내 쓰면서도 ck님과 노대표님을 여태 못 뵜네요..텍큐 cbt끝나면 8월 중순에는 꼭 뵈어요~
@지도르 – 2008/07/10 14:33
감사합니다. 근데 요새 날씨가 더워가지구 에어콘 틀고 그랬는데 걱정이 살짝 됩니다…
@다산 – 2008/07/10 13:22
지금도 살짝 벗어난답니다. ^^
축하드립니다~
저도 아내가 임신테스트기에서 두줄 쾅! 나와서 곧 병원에 가봐야하는데 열달후엔 같은 마음으로 글을 쓰고 있게 되길 기대합니당. ^0^
다시 한번 축하드려욧!!
ps. 참고로다가 사모님 산후조리는 반다시 잘시켜주셔야 합니다~. 병원에 조리 잘 못해서 오래 고생하시는 분들이 어찌나 많이 오시는지. 좋은약 좋은음식 따뜻한 사랑으로 100일간!! 잘 보살펴 주세요~.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근데, 키우다보면 점점 신기해진답니다. 다만, 내 컨트롤 범위를 점점 벗어난다는 점과 함께 말이지요..
이쁘고 건강하게 키우세요~
축하드립니다. ^^
@Dannaeyang – 2008/07/09 23:15
손가락 발가락이 얼마나 긴지.. 아빠 닮아서 게으를 거 같아요.
@Dotty – 2008/07/09 14:48
도티님도 어서… 🙂
@마루날 – 2008/07/09 14:40
"무한한 사랑과 인내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배우고
길러지는 것임을 알 수 있게되죠"
좋은 말씀입니다. 이제 며칠 안되었지만 힘든 부분도 많더군요.. ㅠ
@마음으로 찍는 사진 – 2008/07/09 14:39
저도 둘째땐 원샷에 도전 🙂
@편집장 – 2008/07/09 14:38
감사합니다~
@shumah – 2008/07/09 14:26
전혀 관심없었는데.. 이제 사야 할거 같애요 ㅠ
@promise4u – 2008/07/09 14:21
부대를 빨리 탈영하시지요 🙂
@1004ra – 2008/07/09 13:44
나 메뉴는 말 안했거든요? ㅠ.ㅠ
@egoing – 2008/07/09 13:41
밥먹으러 가면 안됩니다 🙂
축하드립니다 🙂
축하드립니다.
저 손놀림이 심상치 않아 보입니다. 벌써부터 초인의 힘을 발산하는거 같아요~ ^^
새 생명의 탄생 축하드립니다. ^^
오오! 축하드립니다!! ^^
와 축하합니다^^
축하드립니다!!! 정말 정말 정말 기쁘실 것 같습니다.
저도 이제 막 4주가 되가는 아이의 아빠입니다.
아이가 태어날 즈음에 일이 벌써 4주나 되었다니…
앞으로 엄청난 변화가 앞에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
무한한 사랑과 인내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배우고
길러지는 것임을 알 수 있게되죠.. ㅎㅎ
축하드립니다.
우선 축하 드립니다. 🙂
탯줄 이야기가 나와서 인데.. 저도 첫째 때는 2번에 자르고, 경험을 살려서(?) 둘째 때는 원샷이었습니다. 컥…
아무튼 다시 한번 축하 드립니다. 🙂
축하드립니다. ^^
앞으로 아가 사진이 포함된 포스트도 종종 올라오겠네요. ㅎㅎ
ㅎㅎ 다시 한번 축하드립니다.
슈퍼맨쥬니어로 뭔가 비범함은 안보이던가요^^?
새로운 사진이 올라오길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ㅎ DSLR 사셔야 하는거 아니에요^^?
저도 희주 태어나고 생전 처음 탯줄을 자를 때 그 느낌을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다시 한번 출산 축하드려요~ 🙂
오…. 앞으로 9개월후에 아빠가 될 저에게 아주 도움이 되는 생생한 체험수기였습니다^^
축하드려요~
아직 아이를 가질 기회가 전혀 없는 저로서는(솔로부대) CK님의 글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부러우면서 아이가 태어남에 대한 CK님의 벅찬 마음이랄까 이러한 것들이 잘 느껴지는 글이었습니다 ^^
아가의 앞날에 행복함이 가득하길 기도할게요- 축하드립니다!
헉.. 1004ra님의 댓글.. 어떤 내용인지 기대됩니다. 🙂
사라님, CK님 다시 한 번 진심으로 축하드려요~
여보~ 당신도 정말 고생많았어요^^ 비록 당분간은 순대국과 마늘 근처에도 가기 싫겠지만..ㅋ 그것 또한 이제는 하나의 에피소드가 되었넹~ 울 이삭이 정말 사랑으로 몸도 맘도 건강하고 튼튼하게 키웁시다!
흑흑. 감동적이내요. 가르침 헛트로 듣지 않고 간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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