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엘이라는 남성잡지에 최근 체스터님과 함께 한컷을 찍었다. “비즈니스 버디”라는 기획코너에 나왔다. 막상 실제로 인쇄된 프린트물 잡지에 내 모습이 나온걸 보니 신기하기도 하고 쑥스럽기도 하다.
촬영장에 갔더니 컨셉이 술잔을 기울이는 컨셉이란다. 장인어른이 목사님이고 나 자신도 모태신앙인 사람에게 술 컨셉은 조금 부담스러웠다. 그러나 어쩌랴, 사진작가가 의도한 컨셉을 바꿀 수는 없는 일. 그래서 술잔을 서로 기울이며 담소를 나누는 장면의 연출에 적극 협조를 했다. 아니, 협조하려고 하는데 잘 안되더라. 둘이서 친밀한 이야기를 하면서 쾌활하게 웃으라는데, 일 이야기를 빼니 별로 할 말이 없고 웃음도 3초이상 웃기가 힘든거다. 나중엔 사진작가가 (과장 좀 보태서) 거의 독일월드컵 토고전에서의 조재진 입모양을 그리려고 하는것 같았다. 그런데 어찌 우리뿐이랴. 대한민국에서 일하는 남자들 두 명을 데려다놓고, 자 지금부터 둘이서 쾌활하게 계속 웃어 보세요~ 라고 말하면 잘 할 수 있을까? 유재석과 노홍철이라면 모를까.

나는 GQ나 루엘같은 남성잡지를 가끔 볼때마다, 이런 류의 잡지는 좀 피상적인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 이런 남성잡지는 주로 벤틀리와 렉서스 이야기, 애플과 소니의 전자제품 이야기, 셔츠 하나에 수십만원씩 하는 명품 브랜드 옷 이야기 등 “형이하학적”인 것들이 대부분의 컨텐츠를 차지하는 것 같다. (“형이하학적”의 정의는 여러가지가 있겠으나, 여기서는 일단 “돈 주고 살 수 있는 것”으로 정의해 보자. 그렇다면 많은 남성잡지, 아마 예상컨대 여성잡지 역시 매우 “형이하학적”이리라.)
결국 우짜든지 성공해서 돈 많이 벌고, 쿨한 제품 많이 소비하는 쿨한 사람이 되어라, 이런 메시지가 담긴거 아닌가, 그런 의미에서 성공이 아닌, 성공의 이미지를 파는 것 같아서 좀 씁쓸했었다. “이거 완전히 허영심 부추기자는 거구만…” 뭐 이런 생각 말이다. 조금은 빗나간 이야기인지 모르지만, 나는 꼬날님같이 정말 실력을 갖추고 열심히 사는 사람을 커리어 우먼이라고 생각하지, 일에 대한 노력과 자기개발은 하나도 안 하면서 “커리어우먼의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 옷과 핸드백에 신경쓰는 사람을 커리어우먼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커리어우먼과 커리어우먼 이미지가 다르듯, 성공과 성공의 이미지는 분명 다른 거다.
그러나 막상 남성지의 중간에 비록 매우 짧은 한토막이지만 끼어있는 내 모습을 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비록 시간적, 물질적 여유없음으로 인해 잡지에 나오는 컷처럼 완존 스타일리시하게 살지는 못하더라도, 스타일리시한 삶에 대한 동경마저 완전히 놓아버리지는 말자는 생각. 그러한 일종의 (좋은 의미의) “긴장감”을 놓아버리는 순간, 나는 뱃살에도 신경쓰지 않을 거고, 옷도 아저씨처럼 추레하게 입고 다닐 것이며, 비즈니스에서 만나는 많은 사람들에게 매력적이고 깔끔하게 보이려는 노력 자체를 놓아버릴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누군가 그런 이야기를 했었다. 언젠가 동창회에 만나서 이성의 동창들을 만날 생각을 하면서, 자신의 사회적 위치나 외모를 다잡아 가면서 살라고. 즉 긴장 완전히 풀고 살지 말라는 것이다. 물론 남 눈치보며 사는 인생은 자기 인생이 아닌 거고, 자기 인생이 아닌 남의 인생을 사는 것만큼 불행한 것은 없다. 그리고 결혼까지 한 마당에 뭐 초등학교 동창회 나가서 불륜이라도 저지를 거란 말인가?^^ 그러나 위의 이야기는 그런 차원이라기보다는 “긴장풀지 말고 배에 힘주고 다녀~ 안그러면 배나와..”쯤으로 받아들이면, 적어도 내게 해가 되진 않을 만한 이야기인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스타일을 일깨워주는, 아니 정확히 말하면 “스타일리시한 삶에 대해서 완전히 담쌓고 살진 말자”는 걸 일깨워주는 잡지는 효용이 없지 않다고 본다. 어쨌든 모든건 받아들이는 사람의 몫이다. 어떤 이는 매끈한 스포츠카를 보고 “내가 무슨짓을 해서라도 저 차 사고야 만다. 옆에 이쁜여자 태우고 룸싸롱 다녀야지” 라는, 지극히 “벨트 아래적인” 생각을 할 것이고, 어떤 이는 동일한 스포츠카를 보고도 “내가 얼마나 사회적으로 큰 일을 해야 저정도 차를 굴릴 자격이 주어질까?” 라는 “벨트 윗적인” 생각을 할 것이다. 형이하학적인 컨텐츠로 가득찬 잡지라도, 나름대로 형이상학적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는 여지가 전혀 없진 않다.
@꼬날 – 2007/10/31 12:14
그날 매우 힘들었다는 것 표현해주세요..ㅋ
@likejazz – 2007/10/31 11:41
흠흠 감사해효~^^
저도 블로그에 이 날의 스케치를 올리다 저장해 두었는데, 마무리 해야겠네요. ㅎㅎ
그 날 두 분 모두 수고 많으셨어요. 그나저나.. 감사합니다~~
이 글도 잡지에 같이 실리는겁니까? 독자들에게 읽혀주고 싶은 글인데요? ^^
@XROK – 2007/10/31 08:43
11월호에 실립니다 🙂 격려말씀 감사해요..
와아-
다음달편에 실리는건가요? +_+
늘 리더기로 몰래몰래와서 좋은 글 눈도둑질만 하다가 갔는데…
좋은 소식(?)이 보여 코멘트 남깁니다 🙂
멋지세요 -ㅅ-)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