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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적 비판의 중요성

삼성과 김용철 변호사간의 줄다리기 가운데 만만치않게 나오는 이야기는 “우리나라 경제를 책임지고 있는 삼성에 대해서 이렇게 흔들면 어떡하나? 아니 삼성 망하면 누구 좋으라고?” 라는 류의 말이다. 안그래도 글로벌 초일류 기업들과 싸우는 게 힘든데, 더군다나 삼성의 녹을 먹던 사람이 직접 나서서 삼성 흔들기를 함으로써 외국에 보여지는 삼성 이미지에 먹칠을 하냐는 것이다.

돌이켜보니 황우석 박사때도 비슷한 주장들이 일각에서 있었던 것 같다. PD 수첩팀이 굳이 황우석 박사의 진실을 밝혀냄으로써, 그나마 척박한 국내의 연구 현실에서 본인의 스타성을 기반으로 연구비를 끌어모으고, 결과적으로 우리나라 생명과학 발전을 가져올 수 있는 토대를 닦을 수 있었던 황우석 박사를 끌어내렸다는 것이다. 황우석 박사 본인도 가짜였던 걸 알면서도 우리나라에서 막대한 연구비를 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쇼” 였음을 알고 그랬던 거라는 두둔도 본 적이 있다. 비록 쇼일지언정, 희망을 계속 이어가고 연구비를 받았었다면 줄기세포 복제에 성공할 수도 있었을 지도 모르는 일이긴 하다.

또 한가지, 웹 2.0 아시아에서 “한국은 IE만 쓰는 나라”라고 비판을 가하면, 왜 그런 이야기를 우리끼리 쉬쉬해야지 굳이 한국을 외국에 알린다는 블로그에서 그런 이야기를 하냐는 비평이 달린다. 그게 전체적으로 한국에 좋을 게 뭐냐는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긴장은, 어떤 조직내에 문제가 있을 때, 그 문제를 낱낱이 밝히는 것이 최선일까, 아니면 만일 그 문제를 조용히 덮고 지나갔을 때 더 큰 공공의 장기적인 이익이 있다고 판단되는 사안의 경우 그냥 지나가는게 더 최선일까라는 점인 것 같다.

물론 사안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나는 전자, 즉 당장은 아프더라도 문제를 낱낱이 밝히는 게 더 나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금광석이 금으로 탈바꿈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센 불에 연단되는 것 뿐이기 때문이다.

물론 털어서 먼지 안나는 사람 없는데 맨날 털기만 하는 것도 나쁜 짓이고, 해서는 안될 짓이다. 그리고 솔직히 후자의 경우가 더 나은 선택일 때도 있을 지 모른다. 그러나 뭔가 문제가 있는데 덮어두고 그 위에 집을 짓는 것은, 썩은 나무를 가지고 도장을 예쁘게 파는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다. 아무리 도장을 예쁘게 파더라도 썩은 나무는 부서질 수 있다. 투박한 막도장일지언정 튼튼한 나무를 구하는 게 우선적인 일일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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